LBC 화술강의

09. 비판에 대응하기 - 분노하지 말고 기술적으로 대응하세요

Meltice 2017. 6. 14. 12:51

안녕하십니까. LBC강의실 화술강좌 편을 맡고 있는 소장 LBC소장 임철웅 입니다. 오늘은 지난 주에 예고해드렸던 대로 비판에 대응하는 것, 혹은 비판을 수용하는 것에 대해서 여러분들한테 강의를 해드릴게요. 바로 들어가죠. 비판, 저번 주에 우리가 갈등을 해소하는 것에 대해서 좀 구조화 시키고, 그런 부분 저번 시간에 우리가 말하는 건 안 배웠어요. 머릿속에 갈등은 해소될 수 있다, 갈등은 해소되야 하는 것이다라는 것을 머릿속 혹은 마음속에다가 두고 오늘 강의를 들으시면 조금 더 수용하기가, 혹은 이해하시기가 편하고 쉬우실 거에요. 비판을 들었단 말이죠. 내가 누군가한테 비판을 들었어요. 여러분들은 어떻게 반응합니까. 일반적으로 네 가지의 반응이 일어나요. 하나는 폭발하죠. 뭐라고, 너 나한테 뭐라고 했냐. 이게 비판의 반응이죠. 개인적으로는 가장 안 좋은 비판의 반응일 수 있다 라고 생각을 합니다. 또 하나, 보죠. 어떤 반응이 있나요. 그냥 무시하는 것. 막 비판을 받았아요. 그러면 뭐, 에이씨 뭐라는거야. 이런 반응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런데 데게의 사람의 경우 제가 인제 이런 비판을 실습을 했을 때 가장 많은 사람들이 택하는 반응은 물론 강의 실습중에 갑자기 폭발을 해버리거나 무시하기는 힘드니까 그럴 수 있지만 가장 많은 사람이 하는게 결국 변명입니다. 변명을 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는 해명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비판을 한 사람 입장에서는 그건 변명으로 밖에 안들립니다. 사람은 다 자기 기준에서 생각하니까. 인간은 그렇게 크게 성장하지 않아요. 심지어 남의 문제에 대해서 비판을 하면서도 별로 그렇게 알고 싶어하지 않아요. 이게 어쩌면 뭔 사람이 그렇게 나약하고 뭐 그것밖에 안되는 존재야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왜냐면 사람은 뭐든지 잘 알수 없거든요, 자기 입장에서 자기한테 보이는 것만, 혹은 자기를 더 높이는 활용하기 위해서만 무언가를 활용하는 게 굉장히 많아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해명은 대부분의 해명은 변명으로 밖에 안되는 그런 안타까운 현상이 일어나죠. 그리고 또 비판을 어떻게 반응하죠? 반사. 야 너, 그렇게 요즘 살쪘어? 너 몸관리 안하냐? 예를 들어서 그렇게 말했어요. 그 때 그냥 말그대로 반사. 이것도 반사지만, 야 이씨 너도 살쪘어. 너 왜이렇게 요즘 게으르냐. 야 너가 더 게으르지. 예를 들어서 이런거. 이게 인제 반사죠, 반사. 보통 인제 비판에 이런 식으로 대응을 해요. 이렇게 네 가지에 대해서. 근데 이 네 가지 예를 들은 건 왜 그러죠? 이 네 가지 하면 안된다는 뜻으로 얘기를 해드린 겁니다. 지금 제가 말씀드린 이 네가지는 하시면 안되는 네 가지에요. 그러면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되죠? 상대가 비판을 했으면 우리는 차분하게 그 비판의 원인, 이유, 내용을 알아야 됩니다. 왜냐면 그래야 그 비판을 발전적으로 수용하거나 아니면 그 비판에 대응할 수가 있거든요. 여기서 절대 분노하면 안돼요. 그 다음으로는 공격적이거나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지도 마세요. 여러분들은 차분하게 육하원칙에 따라서 다시 질문을 할 수 있으면 좋지만, 그건 쉽지 않겠죠. 하지만 최대한 아, 그래, 그 니가 지금 비판하는 내용에 대해서 이해했어. 근데 지금 그게 언제 일어난 것에 대해서 얘기하는 거지? 예를 들어서 너 저번에 그 숙제도 안하고 이거 과제 이게 뭐야. 아, 그 과제라는 게 어느 수업에서 나왔던 과제를 말하는 거지? 이제 다시 한번 확인을 해야죠, 일단. 물론, 물론 상황과 상대에 따라서 가만히 있는 게 나을 때도 있다. 상대가 비판을 할 때 그냥 듣고 네 알겠습니다.하고 넘어가야 되는 상황도 있어요. 어쩌면 그런 상황이 더 많은 사회일지도 모릅니다. 뭐 군대에 있거나, 아니면 직장에 있거나, 그러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가만히 있는 게 나을 수도 있겠죠. 그리고 내 말투가 자체가 너무 공격적인 말투다, 아니면 내가 그런 인식을 상대들한테 심어준 상태다 그러면 수용하는, 그냥 내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정도로 넘어가는 게 가장 좋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일단 다른 수용하는 법을 차근차근 알아봅시다. 제대로 된 수용,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거, 상대방 의견에 동의하는 것, 이런 화법은 굉장히 존경받을 수 있는 화법입니다. 일단 상대방 말이 아 맞습니다. 아, 맞고요, 이거는 굉장히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어투 중에 하나에요. 상대방 말이 맞다, 반박은 그 다음인거죠. 여기서 감정이 들어가 있으면 안돼요. 아 당신의 말에 어, 충분히 맞습니다. 지금 그런 부분 지적한 걸 보니까 어, 굉장히 날카롭고 센스있네요. 하지만 저는 그 부분에 대해서 이런 식으로 좀 더 생각해 봤습니다 라고 그렇게 하면서 다시 이제 디테일하게 더 들어갈 수 있는거죠. 비판에 그런 식으로 대응할 수 있는거죠. 상대가 무언가 비판을 하거나 지적을 했을 때 다 수용할 필요가 없는거에요. 내가 그러니까 긍정을 했다고 그래서, 아 맞습니다, 맞는데 이런 부분도 있죠. 그렇게 얘기를 진행할 수도 있겠죠. 실제로 몇 가지 예를 좀 들어보면, 실제로 제가 운전을 굉장히 못 하거든요. 운전을 되게 못해요. 심지어 제 친구들은 운전을 되게 잘해요. 그러니까 상대적으로 운전을 제가 더 못하게 보이게 되죠. 같이 여행을 다니고 그럼 맨날 욕먹어요. 한 명은 운전병이고 한명은 운전 뭐 그거 뭐야 자동차 회사에서 뭐 그런데서 있고 그러니까, 그래서 운전을, 아 운전 진짜 못하네 라는 비판을 저는 진짜 많이 듣거든요. 그래서 그런 때는 뭐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까요. 아, 내가 너보단 잘해, 아니면 무시해 버리거나. 야 그 말좀 그만해 라고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죠 앞에서 한 것 처럼. 하지만 여기에서는 아 그러게 운전 좀 만 잘했어도 운전병도 하고 그랬을텐데, 아무래도 나이가 드니까 동체시력도 더 떨어지고 그러네. 이거는 그냥 뒷말은 농담이고, 그냥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고자 하는 농담이고, 결국 그래 알았다 라고 수용하는 것 뿐이에요. 니 말이 맞다 하지만 거기서 니 말이 맞았다면 더 좋았을텐데라는 그런 식의 수용이고, 물론 인제 그냥 친한 친구들끼리는 뭐라는거야 병신이 라고 하며 넘어가면 되겠죠. 근데 우리는 이제 뭐 여자친구라던가 아니면 조금 다른 관계에선 이렇게 말을 하면 서로가 상처받지 않고 마무리가 될 수 있겠죠. 이거는 뭐 여자친구가 하는 말이에요. 다음 예를 들어볼게요. 아, 너 왜이렇게 맨날 늦냐. 뭐 친구들끼리 이런 말 할 수 있죠. 그럴 때에는 아, 그렇게 느꼇을 수도 있지만 오늘 늦은 건 내가 잘못이고, 그렇게 느꼇을 수도 있지만 이번 달에 늦은 건 오늘이 처음이야. 지금 제가 한 말에서 어떤 부분이 지금 여러분들한테 와닿나요. 두 가지죠. 하나는 사과를 했어요. 그리고 또 하나는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다 라고 수긍했어요. 그래 니 말이 맞겠다,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증거를 제시했습니다. 이번 달에는 늦은 게 처음이야, 근데 이게 막 그 날 1일이야 이게 말장난이 되는 거고, 아니면 올 해 회사 들어와서 늦은 건 이번이 세번째야, 아니면 내가 너 만나면서 늦은건 그 날에서 오늘 선물 산 거 빼면 두 번 밖에 안돼. 예를 들어 그렇게 말을 할 수도 있고, 근데 물론 이게 공격적이거나 그렇게 되면 바로 싸움이 됩니다. 뭐라는 거야, 그래서 잘못하지 않았다는 거야? 뭐 이런식으로 되고, 하지만 나는 처음에 이미 사과를 하는 거죠. 아 그래, 미안해, 그리고 맨날 늦었다고 느꼈을 수도 있겠구나. 그 부분에 대해서 굉장히 미안한데 오늘 늦은건, 이렇게 하면서 설명을, 근데 싸우기 싫고 수용하고 넘어가거나 이 사람이 버릇처럼 화를 내는 거면 그냥 넘어가면 되요. 너무 심하게 버릇처럼 화를 내는 사람이면 안 만나면 되는 거고. 쿨하죠. 그 다음에 또 있습니다. 또 하나의 예가 있어요. 대학생이 학점이 좋아야지 빨리 너 레포트좀 써. 레포트나 써, 고등학생이 공부를 잘해야지, 빨리 가서 숙제해 집에 들어가서 공부해 빨리 들어가서 숙제해. 고등학생이면 공부를 잘 하면 좋겠죠. 그렇죠? 아, 고등학생이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죠. 그런데 지금 숙제는 다음 주 까지여서 지금 당장 진행하지 않겠어요. 라고 말을 할 수도 있는 거에요. 이 말이 무슨 말이냐, 지금 왜 처음에 비판 자체가 어느 부분이 문제냐, 앞에 말은 반박할 수 없는 이론이라는 말이죠. 고등학생은 공부를 해야지, 학생은 공부를 해야지, 그래요, 그 동의해, 오케이, 학생은 공부해야 됩니다. 근데 바로 뒤에 붙었죠, 지금 당장 숙제해가 들어가요. 이게 마치 고등학생이면 지금 당장 숙제를 해야지 라는 말처름 되는거에요. 이건 이 비판 자체가 어쩌면 문제가 있을 수가 있어요. 어떤 기준으로 들어갔냐면 비판 자체에 반박할 수 없는 내용이 들어간거야. 고등학생이면 공부를 해야지, 알아, 반박할 수가 없어, 오케이, 그 뒤에 바로 붙는 게 논리적으로 맞지 않아, 하지만 감정적으로 이 사람은 반박할 수 없는 말을 했기 때문에 왠지 내가 지금 당장 숙제를 안하면 고등학생이 아닌, 고등학생 의무를 저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에요. 상대가 이미 그렇게 함정을 파놓고 말을 하면, 이게 반박하기가 참 쉽지가 않아요. 명확하게 상대가 반박불가인 말까지만 수긍하고 그 뒤에 말에 대해서는 내 의견을 주장하는, 피력하는 방법으로 상대 말에 대응하는 기술이 있습니다. 이게 지금 말씀드린 거죠, 아 고등학생이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되죠, 아 그렇지만 지금 그 과제에 대해서는 기한이 다음 주 까지이기 때문에 저에게는 지금 좀 생각할 여유가 있습니다, 지금 좀 생각하는 중이에요. 라던가 하지만 뭐 레포트는 다음 주에 쓰도록 하겠습니다. 그건 별개의 문제라는 거에요. 떨어트려 놔 줘야 되, 누구 맘대로 그걸 이어가지고 나를 억압할려고, 어떤 뜻인지 알겠죠? 그리고 막 주변에 그런 정보들 많이 줘요. 야 이거 주식 사, 이거 대박이야 대박. 이거 내가 너한테만 알려주는 건데 이거 대박이래. 좋은 정보 줘서 고마워, 어 땡큐.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그거는 리스크가 좀 큰거 같애. 그거는 말 그만해. 그 사람이 짐 싸들고 다니면서 내가 사는 거 감시하고 그러면 귀찮죠. 그러진 않겠죠. 그런데 이정도에서 끊으면 이정도에서 더이상 말은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좋으면 지나 사지, 뭐 비판은 아니지만 이런 식의 동의 같은 것들이 있을 수가 있어요. 여러가지 실습대화가 있을 수 있겠죠. 직장을 그만 둘려는 남편, 그리고 아내. 아니면 뭐 친구. 나이가 들어서 이직하려는 친구한테 친구들이 막 그러는 거죠. 야 너 이씨 나이가 몇살인데 지금 회사를 옮겨, 미쳤냐, 너 누가 이 나이에 누가 받아줘 너를, 그냥 다녀, 그냥 다니는 대로 다녀. 참고 다녀, 이렇게 친구가 비난했어요. 뭐 비난이라고 보면 위로, 아니면 뭐 응원을 해주는 걸 수도 있고, 자기 나름 옳은 소리를 해준 것일 수도 있지만, 그래 니가 말해준 것처럼 나이가 들어서 스스로 옮기는 게 굉장히 힘들거야, 새로 들어가는 것도 힘들거고, 그런면에서 걱정해주는 거 고마운데, 나는 이 회사에 대해서 더이상 다니지 않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있어, 그리고 새로운 회사도 옮길만한 난 타당한 이유가 있고, 나는 도전할 거고 만약 니가 그 이유에 대해서 궁금하면 뭐 얘기를 해 줄 수도 있어 라고 하면 상대가 얘기를 해달라고 했으면 내 그 뒤 얘기는 변명이 아닌 게 되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얘기를 할 수가 있겠죠. 직장, 니 말이 맞아, 내 나이에 옮기는 건 쉽지 않겠지, 오케이 네 말은 맞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유가 있습니다. 변명이 아니에요, 니가 말 해달라면 해줄거야, 듣고 싶으면 듣고 싶다고 말하렴. 어떤 접근인지 알겠죠. 여러분들 이런 갈등상황 뭐 비판을 받는 어떤 상황이 또 있나요. 야근하는 남자친구, 아, 나 오빠 보고싶은데 또 야근이야? 아, 나 보기 싫어? 남자가 말하죠. 아니 내가 야근하고 열심히 일을 해야 너 맛있는 거도 사주고, 그리고 성공해야 니가 나 떳떳한 아 됐고, 그래서 지금 몇시에 나올 건데, 오늘은 너무 늦을 거 같으니까, 뭐 집에 들어가라고? 이렇게 싸움이 나잖아요? 이런 경우는, 이런 경우에는 오히려 상대가 오빤 맨날 야근이야 라고 했을 때 아까 처럼, 맨날은 아니고 이 번 달에 지금 두 번 밖에 안됐어 이런 것 보다, 어차피 이해를 구하기는 쉽지가 않아요, 그럴 때에는 감정적으로 접근하는 게 낫습니다. 감정적으로, 여기서는 제가 닭살이어서 멘트까진 하지 않겠어요. 좀 감정적으로 상대를 감싸는 그런 식의 멘트, 논리를 굳이 얘기하지 않는 게 어쩌면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아시겠죠? 뭐 여러가지 예시들이 있을 수 있어요. 여러분들은 어떤 갈등 상황을 많이 겪고,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대안은 없는지, 혹은 여러분들의 갈등 상황을 저한테 보내 주시고, 소장님이라면 어떻게 이런 갈등상황에서 말을 하고 싶으신가요? 라고 저한테 보내주실 수도 있겠죠. 뭐 그런 경우에 제가 보고 뭐, 저는 이런 경우라면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라고 제가 보내드릴 수도 있고. 혹은 그 예시를 뭐 이렇게 여러분들한테 왔는데 여러분들이 보내주셨는데 이 예시를 듣고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라고 여러분들한테 다시 물어볼 수도 있겠죠, 뭐 저한테 보내주실 때에는 홈페이지를 통해주셔도 보내주셔도 되요, 홈페이지에 다 메일주소 있으니까, 홈페이지는 네이버 코리아, 아 네이버 코리아레, www.lbckorea.com 혹은 .net으로 보내주시면 되고, 뭐 여러분들이 생각하시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죠. 뭐 아들이나 딸이 있는데 너무 게임만해, 공부를 시키고 싶어, 혹은 우리 회사에서 우리 상사는 회식을 너무 자주하자고 그래요. 아 너무 그래서 집에 가고 싶어서 말을 해도 옛날 얘기하면서 못가게 해요. 어떻게 할지 모르겠어요. 옛날에는 다들 그냥 회사에서 그냥 회식만 하다 죽었나봐요, 뭐 이런 것도 좋겠죠. 주변에는 갈등 상황이 얼마든지 있고 그런 것들을 해결하지 못 해서 고민하고 있는 분들도 있겠지만, 우리가 그런 걸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봅시다. 그리고 제 강의를 들었다면 어떻게 해결 할 수 있는지, 비판을 어떻게 수용할 수 있는지, 한번 찾아보는데 조금 더 수월하게 노력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러면, 그 비판에 대응하고 비판에 있어서 피해받지 않는 사람을 여러분들한테 여러분들 한테 만들어 드리기 위해서 피해자가 되지 말자라는 주제로 좀 몇 가지를 말씀 드릴게요. 스스로 피해자를 만드는 말이 있어요. 갈등 상황이 오기도 전에 이미 진거야 이건, 물론 갈등이 이겨야지만 되는게 아니지만 이미 자기가 진 상태에서 뭐든 갈등을 접해버리면 안되잖아요?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아예 또 외통수네, 아 외통수라는 건 장기같은 걸 둘 때 더이상 빠져나갈 수 없는 구멍이 없어, 뭐 수가 몇 수가 남았던 백 수가 남았던, 어쩔 수 없이 상대한테 질 수 없는 그런 결말 밖에 안 남아 있는 뭐 그런 걸 외통수라고 하죠. 여러분들 다 아시겠지만 제가 노파심에 설명했습니다. 뭐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아, 귀챃게 뭘 따져. 알았어, 너 알아서 해. 이거 이 두 가지는 결국 아무도 존경하지 않게 되는, 스스로 피해자가 되는 이미 갈등 상황 이전에 져버린, 서로서로 이길 기회가 아닌 이미 본인이 졌으니까, 본인이 이미 졌으면 둘 다 지거나, 나는 지거나 둘 중에 하나겠죠. 우리는 이미 그런 상황을 만드는 그렇다면 할 수 없지, 혹은 귀찮게 뭘 따져 이런 류의 말은 하지 않는 걸로 오늘 약속을 합시다. 그리고 갈등 상황에 있어서, 갈등에 대응할 때 상대가 비겁한 말투를 쓰는 경우가 상당히 많아요. 상대가 쓰면 비겁한 거 우리가 쓰면 기술적인 거죠. 여러분들은 두 가지 시점에서 제 강의를 지금부터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상대가 이런 식의 말투를 썼을 때는 비겁한거고, 내가 쓸 때는 기술적인 거다. 여러분들이 필요할 때는 쓰시고, 상대가 말할 땐 어떻게 대응할 지를 생각해 두시면, 어 이런 갈등 상황에 있어서 좀 억울한 일은 덜 당할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어떤게 있나요, 야, 그정도면 됐잖아. 그 정도면 됐잖아, 그 정도에 만족하면 되지. 이거는 내가 뭔가 권리를 요구할 수가 있거든요. 나는 뭔가 이 정도면 안 되는 거 같은데, 내가 뭔가 더 요구를 해야 될 거 같은데. 근데 그 말을 들으면 내가 더 요구하는 게 나쁜놈 같애. 더 요구하면 안될 거 같애. 근데 그건 아니거든요. 그 말에는 니가 더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은 나쁜 짓이다라는 암시가 걸려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그 말에 뭔가 미안해지는 거나 그거는 상대 암시에 걸려서 당하는 거지 실제로 내가 더 원한다 안 원한다는 정해져있는 게 아니거거든요. 그건 단지 네 입장이라는 거죠. 그 말에 들어있는 함정은 바로 그 부분입니다. 또 하나, 어떤 말이 있을까요, 상대한테 피해를 주려는 말. 다른 애들은 안 그러는데 너는 왜그래. 다른애는 안그러는 데 너는 왜그래. 이건 뭐 예를 들어서 형제간에 있을 수도 있고, 같은 반 급우들 사이에서도 아이, 다른 니 친구들 봐 어떤 지, 아이 그건 걔넨 걔네고 그리고 당신이 그거 뭐 일일이 몇명이나 조사해 봤는데, 세상에 칠십억 인구가 있는데 그 중에 몇이나 조사하셨길래 그걸 표본화 시켰습니까 라는 말을 목구멍까지 올라와야 되요. 말하면 안되고, 그렇게까지 말하면 안되고, 무슨말이냐면 사람마다 다른 거에요. 지금 너랑 나도 입장이 달라서 이러고 있는데 그 불특정 누군가를 끌어와서 말하지 말자는 거죠. 왜냐면 그런 표본 자체가 어느 정도 뭐 보편화 된게 어떤게 있다고 하더라도 이거는 너와의 문제지 그걸 왜 끌어 옵니까, 라고 머릿속에 생각할 수 있어야 되요. 아니면 내가 누군가를 좀 더 강압적으로 그 사람한테 개성을 제거해주고 싶을 때는 그런 식의 말투를 쓰면 좋겠죠. 뭐 입장에 따라서 활용하거나 아니면 활용당하지 않거나. 뭐 이것은 좀 더 나아가면 이런 것도 있겠죠. 아, 다른 사람들이 다 너처럼 행동하면 세상이 어떻게 되겠냐. 더 강력하죠. 희생을 강요하는 거에요. 희생을 강요하는 말, 이런 류의 말이 또 어떤게 있죠? 아니 다른 사람들 다 그렇게 하는데 왜요, 다른 사람들 다 불평 안하잖아요? 음, 이게 우리 사회가 육식 동물보다는 초식 동물에 가까운 사회란 말이에요. 그래서 무리에서 버러나면 다른 포식자한테 먹혀버린다는 두려움이 있는 사회에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식의 억압은 굉장한 힘을 발휘합니다. 공포심을 심어줘서 반박하기가 힘들어요. 다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 누구,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그 보편이라는 대체 어떤겁니까, 물론 우리가 어느 정도 보편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는 있겠죠, 보편을 알아야 상대를 알고, 그것에 대해서 조종을 한다거나 그것에 대해서 서로가 마음을 열어간다거나 그런게 가능하겠죠. 하지만 상대가 보편을 주장할 때 그게 과연 보편인지는 알아야 되요, 내 그것에 대해서 너무 강압적으로 끌려가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 좀 해볼 필요가 있다는 거죠. 그럼 상대방 욕구가 뭔지 그럼 이제, 지금 부터는 그걸 봅시다. 피해 안 봅시다. 피해보지 맙시다. 그런 말을 하려면, 그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일단 화내면 안돼, 화내면 안되고, 모든 제 화술의 기분은 화내지 맙시다, 화내지 말자에요. 두 번째, 상대방이 뭘 원하는 지 알고 그걸 해주면 되요. 그러면 일단 상대방 자존심, 어 당신 말한게 맞고 그런 부분에 대해서 지적해준 건 굉장히 감사합니다. 예를 들어서 아까 직장에 대해서 지적한 친구 있잖아요. 과연 그 친구가 내가 이직 할려고 걱정해서 그 말 했을까요? 아니에요, 물론 그럴 수도 있죠. 정말 날 걱정하는 친구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 볼 수도 있어요. 그 친구는 자기가 안정적인 직장이라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론 도전해보지 못한 삶에 대해서 한편으로 일견 두려움이 있는거에요. 난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내가 단지 참고 살기만 한 건 너무 많은 기회를 버린 건 아닐까 라는 두려움이 있는. 그런데 그 친구를 회사를 옮기려는 친구를 비난함으로써 나는 잘 살아왔고 나는 너 한테 이거를 가르쳐주는 좋은 친구야 스스로 자존감을 높이는 상황일 수도 있다는 거죠. 좀 기분이 안 좋은가요? 근데 이 사람의 심리에는 그럴 수 있다는 거에요. 그럼 예를 들어서 그러면 그 상대방의 욕구를 그것에 대해서 평가해주면 되요. 어 그래 날 걱정해주는 것에 대해서 고맙고, 난 알겠어. 그냥 그것에 대해서 인정해주면, 그 사람은 다 자기 욕구를 충족한 거에요. 내가 그 뒤에 회사를 옮기는 이유를 말하든 뭐든 나는 니 말에 들어서 고맙고 그래, 그래, 니 충고 잘 알았다. 너 회사 열심히 다니는 거 그래 대단하다. 됐죠? 상대는 그것만 들으면 되는 거에요. 인간이 생각보다 인간은 성숙해지기가 쉽지가 않거든요. 결국 질투하는 아이들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는 게 정말 어려워요.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머물러 있고. 그래서 결국 뭐 아까도 말했지만 다른 사람들이랑 비교하는 그런 경우에는 뭐 당신은 제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얘기하면서 저를 시키는, 저를 원하는 대로 하려고 하는 군요. 뭐 직접적으로 좋고, 머릿속으로 생각해도 좋고. 방침이라는 건 잘 알겠지만, 그 방침이라는 게 규정상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면 이 상황이 고려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명확하게 말해줘야 되요. 아니면 그 사람 이야기 잘 들었어요. 그럼 지금부터 저와 단 둘이 얘기 합시다. 더 이상 다른 사람은 이제 끌어오지 않도록 해요. 만약 그렇게 하면 저도 끌어올 사람이 없겠습니까? 그 뒷말은 사족이에요, 어쨋건 그런 식으로 둘 간의 관계로 다시 끌어와야 되고, 이런 식의 화법을 활용하는 게 좋아요. 물론 여기서 파생하는 다양한 화법들이 있겠죠. 그건 여러분들이 살아가면서 구축이 된 부분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면, 상대방을 옭아 맬려는 말들 또 뭐 만있었나요, 옛날 얘기, 옛날 얘기 많이하죠. 너 그 때 그랬잖아, 너 왜그랬어 그 때, 이거는 왜 그랬어라고 하면 왠지 말을 해야되잖아요. 그럼 그게 변명이잖아요, 과거이고 이미 일어난 일이니까. 그럼 그것 갖고 결국 또 욕먹어요. 그래서 이거는 자체가 질문하는 자체가 어떻게든 욕을 먹을 수 밖에 없는 질문이에요. 그 과거의 일에 대해선 미안해. 하지만 그거는 많이 사과를 할 만큼 했고, 그것에 대해서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으면 좋겠어라고 명확하게 얘기를 하는게 이 상황에서는 가장 좋은 대응책이라고 볼 수 있을 거에요. 뭐, 또 뭐 있죠? 지금까지 그 계속 그렇게 해 왔는데 왜 갑자기 그러세요, 아 그거는 상황이 바뀌었으니까 그렇게 말을 하고, 바뀌었으니까 달라져야지, 지금까지 계속 해왔다고 계속 해야되나? 그건 아니잖아요. 근데 마치 내가 바꾸는 내가 잘못인 것 처럼 말하는 거. 그런거에 휘둘리지 마세요. 그런 비판에 대해서는 이제 뭐 수긍하더라도 명확하에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되요. 그 다음에 뭔가 문제가 일어났을 때 누구 잘못인지부터 따지는 사람이 있어요. 그건 나중 일이야, 그건 나중일이야, 어쨋건 현재에 나아지는 무언갈 찾아야 되는 거죠. 현재를 문제를 끌고 와야되요. 과거 일을 갖고 지금 나한테 비난 하는 사람은 지금 나한테 굉장히 화가 났군요라고 말을 함으로서 그 문제를 현재로 다시 끌어와야 되는거에요. 지금 가지고 얘기를 해야지, 근데 물론 과거 일을 가진 트러블은 결국 해답은 하나에요. 서로 용서합시다. 또 어떤 상황에 그런 비겁한 문장들이 있죠? 내 남자친구나 되는 사람이 어떻게 그런 걸 잊을 수 있어? 내 남자친구나 되는 사람이, 이 말에 강력한 그 기술이 숨어져 있어요. 내 남자친구나 되는 사람이, 남자친구나, 상대를 높였죠? 상대한테 어떻게 보면 자존감을 높여주고 자신감을 키워준 상태에요. 그리고 자격을 부여했어요. 내 남자친구다, 너는 내 남자친구다 근데 왜 그걸 몰랐느냐. 그러면 내가 이걸 몰랐기 때문에 내가 남자친구로 수행하지 않았고, 내가 남자친구나 되는 그런 높은 위치에 있는 거를 그런 좋은 가치를 잃어버릴 수도 있는거죠. 그런 식의 지금 암시가 들어가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라고 하면, 내가 굉장히 잘못한 거 같죠. 내가 이 어마어마한 이 사람 덕택에 어마어마한 가치를 부여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 그것을 한 방에 무너뜨릴 수 있는 무언가를 했구나, 근데 따지고 보면 그런 것도 아닐 거에요. 물론 그런게 있을 수가 있겠죠. 이런 자존심을 높여주는 말을 앞에 배치함으로서 뒤에 강력한 공격에 나는 속수무책에 당하는 거에요. 그건 비판에 대응할 수가 없는거에요. 변명할 수밖에 없고 사과할 수 밖에 없고, 물론 사과하는 건 좋은거에요. 사과해서 관계만 그대로 끌고 갈 수만 있으면. 하지만 기본적으로 내가 앞에 배치된 암시에 걸려서 하고자 하는 말을 못 하거나 아니면 그 오히려 폭발한다거나, 그런 식의 대응은 피하라는 거에요. 여기서는 정답을 여러분들한테 알려줄 수는 없지만, 최소한 이런 말을 들었을 때 여러분들이 드는 기분은 이 앞에 배치된 암시 때문이라는 거는 아실 필요가 있다는 거죠. 내가 너 때문에 얼마나 괴로운지 니가 알아야되 라는 것도 그런 것도 넌 미안해 한다, 미안해 해야만 한다는 암시가 들어있는 거고, 내가 인제 살다살다 그런 말은 처음들어보네, 넌 처음들었겠지. 이런 류의 상대방 옭아매는 말들이 세상에 굉장히 많아요. 여러분들이 저한테 화술 강좌를 들으면서 물론 저는 가급적이면 비겁하게 상대한테 암시를 걸어서 상대를 조종하는 것 까지 여러분들한테 권장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최소한 그 것에 당하지 않는 방법, 당하지 않으려면 어떤 암시가 있다는 건 알아야 될거 아니에요. 그런 부분에서는 최대한 많이 알려드리도록 많이 애를 쓸게요. 나중에 인제 따로 오프라인 쪽에서는 확실히 강의를 해드리는데, 온라인에서는 그걸 자세히 다룰 지 아닐 지 모르겠네요. NLP쪽으로 해서 최면 커뮤니케이션 부분이 있는데, 그거는 아마 후반부에 나오거나 오프라인쪽에서만 다뤄질 거 같아요. 그래서 어쨋건 피해를 보지 않는 화법에 대해선 어떤 게 있냐, 그, 가급적이면 변명하지 않는게 좋아요. 나중에 후회하니까. 그리고 그, 어른들이 굉장히 많이쓰시는 어른분들이 굉장히 많이 쓰는 말투 중에, 내 말 알겠니? 너 내말 이해했니? 어 지금 내가 한 말 알아듣겠어? 이런 말 있잖아요. 왜 어른분들 특히나 어느 권력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이런 말들을 쓰냐면, 내가 어떤 말을 상대한테 할 때는 그 이해를 한다, 이해를 시킨다, 혹은 이 주체가 말을 하는 사람에 있어요. 그러면 내가 인제 상대한테 이해를 했냐고 물어보기 전 까지는 내가 이해를 내가 말을 하는 입장이면 내가 입장을 시켜야 하는 내가 이해를 상대가 못했으면 내가 문제인거에요. 이해 못 시킨 내가 문제야, 근데 내 말에 대해서 잘 이해했니 라고 물어봄으로서 그것은 그 상황에서 상대가 어떻게 대답을 하든 그 책임이 상대한테 떠념겨 지는거에요.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 책임을 우리한테 넘겨진다는 걸 알기 때문에 우린 그 말을 싫어하는 거에요. 물론 내가 그냥 입다물고 듣고 싶은데, 그것에 대해서 대답하는 게 싫지만 그 책임이 나한테 오거든요. 그럼 역으로, 내가 상대와 대화를 할 때 그 책임을 상대한테 돌리기 위해서는 이런 말투를 쓰면 되겠죠. 근데 이런 말투는 상호 신뢰가 약간 깨지거나 나를 피곤한 사람으로 만들 수 있으니까 가급적이면 우리는 쓰지 말자고요. 그렇지만 상대가 그 말을 왜 쓰는지는 심리적으로 왜 쓰게 되는지는 알고 넘어가자는 뜻에서 말씀을 드렸어요. 그리고 그 피해를 보지 않는 화법이라고 했지만, 피해를 보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이 뭔 줄 아세요? 너무너무 쉬운 방법이 있어요. 나한테 피해를 주는 사람과 안 만나면 됩니다. 그런 사람과 만나지 않으면 되요. 나한테 피해를 주는 사람, 어떤 사람이 있죠? 자신이 불행하다, 아 난 너무 괴로워, 날 동정해줘야되, 날 동정해주는 따듯한 너같은 남자 니가 옆에 있어서 행복해, 근데 내 불행좀 더 들어보겠니. 불행 줄줄줄줄, 다음 날 만났을 때 줄줄줄줄. 다음에 만났을 때 자기 가족이 어떻고, 남자친구가 어떻고, 처음에는 신비하기도 하고 감싸주고 싶기도 하고 그렇지만 불행을 그 사람 스스로 끌어당기는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을 곁에 두서는 안 돼요. 나도 덩달아 그런 사람이 됩니다. 그런 사람과 자리, 관계는 빨리 끝내는 게 좋아요. 그리고 내가 사생활을 굳이 다 들어낼 필요 없어요. 실은 내가 뭐 어렸을 때, 어렸을 때 이렇고 이런 얘기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안 하는 게 나아요. 그리고 나를 뭐, 내려 깎고 막 무시한다. 아, 미안하게도 그 말씀에 대해서는 얘끼를 안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일전에 했습니다 명확하게 딱 끊어버려야 되, 내가 거절할 거는 처음에 딱 끊어야 되, 상대가 나를 무시하는 거 같으면 그 말도 딱 끊어버려야 되. 말이 쉽죠, 그쵸? 하지만 여러분들은 기본적으로 어떻게 해야 된다는 건 알고 지나갑시다. 막상 그런 상황이 닥쳤을 때 쉽게 할 수 있는 사람 많지 않아요. 하지만 거절은 단호하게, 그리고 타이밍을 놓치지 말고, 초반에, 초장에 하라, 그리고 오늘은 어쩌다 보니까 인제 논쟁이라는 것에 대해서 계속 얘기를 하는 거 같은데, 논쟁을 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논쟁을 하지 않는 겁니다. 원하는, 원하지 않는 논쟁은 하지 않는 것, 그거에는 제가 아까도 말을 했지만 계속 이해를 못 하거나 그런 사람은 정서적으로 좀 감싸주는 태도를 보여주는 게 더 좋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제가 지금까지 했던 강의 중에 많은 부분을 약간 갈아 엎는 그런 말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가장 여러분들이 오늘 강의중에서 명심할 부분 중에 하나는 윗 사람에게 본인의 승리를 혹은 본인이 잘 났음을 표현하지 말아라. 그냥 윗 사람이 말씀하시면, 윗 사람이 알아듣겠니? 아 그걸 제가 모를 사람으로 보입니까? 그건 충분히 알아들었는데, 이런 부분 바로 지적하지 말고, 그냥 알았습니다 라고 넘어가는게 차라리 속 편할 수도 있어요. 내가 그 사람한테 비판을 듣는 상황이 아니라, 그 사람이 외로워서 주절이 떠드는 거를 여러분들이 그냥 들어 준다 정도로 그냥 마인드컨트롤을 해버리면 그런 상황이 조금 더 편해지실 겁니다. 오늘 제가 인제 그 비판에 대응하는 법, 수용하는 법 뭐 이런 것들을 간단하게 설명을 드렸어요. 이 부분은 나중에 비판을 하는 법, 혹은 설득하는 법 이런 쪽에 있어서 조금 더 자세히 다뤄질 예정이에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다시 한번 얘기를 하기로 하고, 지난 시간에 배웠던 갈등을 해소하는 것과 비판을 수용하는 것을 좀 묶어서 여러분들이 좀 이해를 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그 다른 스피치 이런 강의랑 많이 다른 부분이 있어서 여러분들이 뭐, 좋을 수도 있고, 좀 생소하실 수도 있는데, 제 강의를 쭉 듣다 보면 그 큰 줄기를 찾고 그 줄기 안에서 기술적인 것을 얹어 간다 라는 그 접근을 하게 되면 여러분들이 조금 더 여러분들이 많은 것을 얻어가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오늘 강의는 여기까지고. 원래는 저번 시간하고 오늘 하고 합쳐서 한 주제가 강의가 되는데, 좀 가르치는 툴 자체가 좀 다르다 보니까 두 개로 나눴습니다. 여러분들한테 많이 도움이 됐으면 좋겠고, 제 개그블랙, 개그블랙 골뱅이 닷 컴이고 네이버 카페도 있습니다. LBC상담소, LBC방송국이라고 저희 LBC에서 방송되는 다양한 방송되는 다양한 내용들이 있으니까, 오셔서 댓글도 달아주시고, 문의도 해주시고 등등 해주시면 어, 저에게도 그리고 LBC에서 방송하는 친구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거에요. 그리고 이 방송을 듣는 사람들 간에도 서로가 소통할 기회가 생길테고, 그러면 저는 오늘은 여기서 여러분들께 인사를 드리고 다음 시간에 또 새로운 주제, 여러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주제로 다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화술강좌 비판에 대응하기 편 이었습니다. 이만 마치겠습니다. 강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